고려 중기 이후, 고려 상감청자는 매우 성숙해진 발전 단계에 이르게 되었고, 장식에 쓰이는 각종 문양 역시 고려의 전형적인 특색을 고스란히 담게 되었다. 이 시기에 자주 볼 수 있는 문양으로는 운학(雲鶴), 포류수금(蒲柳水禽), 목단(牧丹), 국화, 연꽃, 보상화(寶相花), 용과 봉황, 쌍어 등이 있다. 주로 자연 경물을 주제로 삼으면서 비현실성과 환상성을 서정적으로 묘사했다. 고려 후기가 되자 이러한 서정적 표현법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고, 문양의 구조는 날로 복잡해졌으며, 문양 자체도 점차 조악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순한 인화기법을 이용해 문양을 처리했고, 이로서 고려청자는 쇠퇴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 발(缽)은 벌어진 주둥이와 깊은 벽, 낮은 테두리형의 받침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바닥 부분에는 세 개의 받침대 흔적이 있다. 주둥이에서 발의 안쪽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권초문(捲草紋)으로 장식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다섯 개의 원형 개광(開光)으로 꾸며져 있다. 발의 중심 부분에는 국화 문양이, 발의 안쪽 벽에는 쌍어(雙魚) 문양이 상감되어 있다. 물고기의 눈, 윤곽, 비늘조각은 각각 검은색과 흰색의 상감법으로 장식되었고, 흑백이 잘 어우러져있으며, 그 꾸밈이 매우 눈길을 끈다. 외벽은 네 개의 개광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모두 절지화훼(折枝花卉)를 상감했고, 각 개광 사이에는 당초(唐草)문양을 사용했다. 주둥이 아랫부분과 몸통의 아랫부분은 각각 권초문과 현문으로 꾸며져 있다. 자기의 형태적인 짜임새가 다소 부족하고, 회색빛이 도는 푸른 유색은 바닥과 다리 끝 부분까지 이어져있다.
번식력이 왕성한 물고기는 고려에서 다복(多福)과 다산(多産)의 상징이었고, 이에 고려청자와 고려청동의 장식 문양에서 물고기 문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쌍어문양은 부부 금슬에 대한 축복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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